이은선 소설가가 전하는 60+독서이야기




‘문인들이 전하는 60+독서 이야기’는 10명의 문인들이 각자 자신의 시선으로 60+독서를 바라본 시리즈입니다.


화성의 노작 홍사용 문학관에서 단편소설 읽기 모임을 할 적의 일이었다.

 

 화성의 노작 홍사용 문학관에서 단편소설 읽기 모임을 할 적의 일이었다. 한국 근현대의 명단편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었기에 창작이나 독후감 쓰기에 대한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이야기 하던 자리였다. 이태준 소설 <달밤>의 한 대목이 끝난 후 이어진 쉬는 시간에는 더욱더 크게 웃고 떠들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들 틈에 끼지 않고 혼자 앉아 앞서 배운 것들을 다시 읽는 누군가가 내 눈에 띄었다. 조용히 다시 책의 앞장을 들춰가며 줄을 긋고,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는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계속해서 읽고 또 읽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이 재개되자 내 말을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모든 말을 받아 적기까지 했다. 수업이 끝나고도 제일 늦게 강의실을 빠져나간 사람도 역시 그 사람이었다.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다정의 마음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그에게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말이 돌아왔다. 다 대학 나오신 분들이, 나 같은 사람이랑 같이 책을 읽어주는데 얼마나 고마워요!

 

독서를 할 때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페이지를 하나하나 읽을 필요는 없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산책을 하다가 혹은 영상을 오랫동안 보다가 눈이 피로할 때 책을 펼쳐보면 된다. 물을 마시듯 가볍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슬쩍 보고 덮으면 된다. 때로는 책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좋다. 여기저기 책을 배치하면 더 좋다. 가방, 에코백, 자동차, 거실, 침실, 작업실, 화장실, 다용도실 등 손이 닿는 곳마다 책들을 두고두고 읽으면 더 좋다.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부터 관심이 없는 분야까지 두루 읽다보면 자기만의 패턴이 생길 것이다.화장실에서는 잡지나 만화책, 침실에서는 건축 관련 책, 자동차에서는 요리책, 대중교통에서는 시집 등 공간에 따라 속성이 다른 책을 배치하면 흥미가 생길 것 이다. 만나는 사람과 공간에 따라 우리의 옷차림이 달라지듯이 책도 자신의 기분과 취향에 따라 골라서 읽으면 재미가 더 할 것이다.



고마워요. 잘 가르쳐줘서.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돋보기 없이 책을 보느라 두 눈이 충혈된 채였다. 자신의 자녀보다도 어린 강사를 어려운 선생님 대하듯이 하는 모습에 오히려 편히 말을 걸었던 것을 후회하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수업은 괜찮으셨어요? 아, 학교서 배웠다는 것도 잊어버렸지유. 그래도 제목이랑 작가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있었어요. 폐지 주울 때 책들 좀 많이 날랐는데 제목은 빠삭했죠. 이게 그 내용이었구나 싶드라니까? 어릴 땐 읽으라고 싸잡아 줘도 안 봤었지. 학교도 다 못 끝내고 이래저래 살다보니, 또 우리 나이 되니까 배웠거나 안 배웠거나 은퇴하는 건 마찬가지더라고. 그래서 용기내서 나와봤지요. 이번 참에 한 번 제대로 책이나 읽어보자고. 고마워요.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조금 더 가열차게 책을 읽을 걸, 한뼘 더 열정적으로 수업을 할 걸, 아니 같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걸. 내가 더 뭐라고 말을 붙이기도 전에 그는 선생님 안녕히 계시라며 곱게 인사를 하고 총총 멀어져갔다. 주머니에 있던 박하사탕 두 개를 내게 나눠준 다음의 일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며 졸릴 때마다 먹은 박하사탕이 입에 인이 박혀서 이제는 안 먹으면 허전하다며 수업 때 사탕을 돌리던 손이 그 손이었나 보았다.



그들의 모토는 “읽기는 60부터!

 

 이후로 달라진 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내 쪽이었다. 수업을 조금 더 쉽고, 많은 해설을 덧붙이려고 노력했고 수강생들의 더 세세한 피드백을 듣기 위해서 수업 예정 시간을 훨씬 늦게 끝내기도 했다. 서로의 마음이 합쳐진 까닭일까. 한국명단편소설 읽기 모임은 그야말로 성황리에 끝나고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휴지기에는 스터디 모임을 결성하어 나를 초청해주었다. 부르시는 대로 불려 나가며 함께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하기를 육 년. 이제 나는 책 읽기와 그것이 소환하는 추억, 묻었던 기억 그리고 툭 불거지는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시간들을 인정한다. 그분들 덕에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모토는 “읽기는 60부터!”다. 그 나이가 되니 주변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전같이 어렵지 않게 되어 책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식이든 배우자든 당신들의 손을 전처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 스터디 모임의 계획은 “왕년 교과서”에 나온 문학작품들의 전작을 읽는 것!

 그들의 계획은 아직도 절찬리에 진행 중이다. 이 글을 읽는 눈과 마음들에게 책 읽기 방식을 추천해야 한다면 나는 바로 이것을 권하고 싶다. 학창시절에 그냥 지나친 작품들을, 제목과 작가도 헷갈리던 그 “명작”들을 이제부터라도 읽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몸에 동봉되었던 예전 생각들을 책 속의 문장에 녹여내며 재해석 하는 자리도 꽤나 쏠쏠한 재미를 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제야 “아, 나 공부 좀 열심히 했다” 혹은 “책 좀 읽는다”는 소리를 하게 되지 않을까.


 거듭 강조 하건데, 제대로 된 책 읽기는 어쩌면 ‘60’부터일지도.

이은선

이은선 소설가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발치카 No.9(문학과지성사)’, ‘유빙의 숲(문학동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