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외국 시 읽어봐요 – 폴란드, 독일, 미국 현대 시를 만나요

 

중학교 때부터 시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릴케, 예이츠, 프루스트 시인들의 시를 공책에 옮겨적는 게 즐겨했습니다. 지금도 국내 작가를 넘어, 좋은 시도 많고 아름다운 시인도 넘쳐납니다. 가끔 푹 빠져 찾아가곤 합니다. 시를 찾아, 시인을 찾아서 여행을 떠납니다.

자연과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국내 시와는 조금 다른 신선함이랄까, 생소한 맛이랄까. 폴란드 국민작가인 쉼보르스카와 평생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온 메리 올리버, 동독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라이너 쿤체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공감할 수 있는 시 이야기입니다.


1.『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 208쪽

쉼보르스카는 “사진에 근사하게 나오려면/ 많은 세월이 요구되는 법(…)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이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리.” 구절이 나오는 『끝과 시작』으로 알게 된 시인입니다.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곱씹게 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86세에 열두 번째 시집 『여기』를 출간하고, 다음 시집을 『충분하다』로 제목을 말했다고 합니다. 『충분하다』 시집은 시인이 죽고 유고시집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시인은 등단 초기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삶을 그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사물이나 현상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고정관념 없이 성찰하면서 본질을 꿰뚫어보고자 했다고. 시를 읽고 또 읽어봅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시 일부를 소개합니다.

<기억과 공존하기엔 힘겨운 삶>이라는 시입니다. “(…) 기억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늘 현재보다 젊다./ 기쁘긴 하지만, 왜 항상 그 타령이 그 타령인지./ 모든 거울들은 내게 매번 다른 소식을 전해주는데.//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면 화를 내면서/ 불쑥 꺼집어낸다, 내가 저지른 모든 해묵은 실수들,/ 심각하지만, 훗날 가볍게 잊혀버린 실수들을./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내 반응을 주시한다./ 하지만 결국엔 이보다 더 나빴을 수도 있다며, 나를 위로한다.// 내가 오로지 기억을 위해, 기억만 품고서 살기를 바란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이라면 더욱 이상적이다.(…)”“ <책을 읽지 않음> 시에서 끌렸던 구절입니다. ”서점에서는 프루스트의 작품에/ 더 이상 리모컨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는 더 이상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다른 생명을 먹는다./ 사망한 양배추를 곁들인 돼지고기 사체./ 모든 메뉴는 일종의 부고(訃告).(…)“ 끝으로 <나의 시에게> 시 구절입니다.

”가장 좋은 경우는/ 나의 시야, 네가 꼼꼼히 읽히고,/ 논평되고, 기억되는 것이란다.// 그다음으로 좋은 경우는/ 그냥 읽히는 것이지.// 세 번째 가능성은/ 이제 막 완성되었는데/ 잠시 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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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긴 호흡』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 168쪽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는 평생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메리 올리버는 시집도 좋지만, 산문집도 반가웠습니다. 자신의 생애 속에서 드러난 자연과 삶, 문학에 대한 섬세한 이야기들이 시보다 더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처음 시로 알았는데, 문학으로 사는 삶이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삶을 생생하게 표현한 구절은 나를 흔들었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있기>, <펜과 종이 그리고 공기 한 모금>, <시인의 목소리>.

시인은 열네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미국 예술가들의 고장 프로빈스타운에서 날마다 숲과 바닷가를 거닐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글을 쓰고 소박하게 살다가, 2019년 1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인은 “비범함은 야외를 좋아한다. 집중하는 정신을 좋아한다. 고독을 좋아한다. 매표원보다는 모험가를 가까이한다. 그렇다고 안락함이나 세상의 정해진 일상을 얕보는 게 아니라, 관심이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람은 멍하고, 무모하고, 사회적 관습들과 의무들을 소홀히 한다는 인식이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는 세 번째 자아가 통치자다.” 라고 적었습니다.

<펜과 종이 그리고 공기 한 모금> 글에서는 일상이 나옵니다. “나는 30년 넘게 거의 늘 뒷주머니에 공책을 넣고 다닌다. 항상 가로 3인치(7.5cm), 세로 5인치(12.5cm)의 작은 크기에 손으로 꿰매어 만든 같은 종류의 공책이다. 이 공책에 시를 쓰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결국 시에 등장하게 될 문구들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이 공책들은 내 시의 시작인 셈이다. 거기에 내게 영구적으로나 일시적으로 중요한 여러 사실들도 기록되어 있다. 봄에 어떤 새들을 보았을 때, 주소, 읽고 있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 사람들이 한 말, 쇼핑 목록, 레시피, 생각들.” “공책에 적힌 문구나 아이디어 가운데 일부는 영영 완성된 산문이나 시로 도약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나의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를 갈고닦지 않거나, 나의 의식에게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나는 공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쓰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무질서하게 사용한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지는 대로 쓴다.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 이런 글들을 읽다 보면 시인이 보이고 시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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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엉겅퀴』

라이너 쿤체 지음, 전영애, 박세인 옮김 ∣ 봄날의책 ∣ 2022년 ∣ 184쪽

괴테 할머니로 알려진 전영애 교수는 서독에서 출간된 동독 작품만을 읽고 번역을 하다가, 가장 눈을 번쩍하게 만든 작가가 ‘시의 스승’ 라이너 쿤체라고 했습니다. 작가의 시집을 시 전문 도서관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들려왔습니다. 와 닿은 시들을 옮깁니다. 그냥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은엉겅퀴>, <우리 나이> 전문입니다. “뒤로 물러서 있기/ 땅에 몸을 대고// 남에게/ 그림자 드리우지 않기//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 “우리 나이/ 굽히기가 어려워지는 나이,/ 하지만 쉬워지지/ 숙이기는// 우리 나이/ 놀라움이 커지는 나이// 우리 나이/ 믿음에는 붙잡히지 않으며/ 태초에 있었던 말씀은 존중하는 나이”. <늙어>라는 시에서 무릎을 딱 쳤습니다. “땅이 네 얼굴에다 검버섯들을 찍어 주었다/ 잊지 말라고/ 네가 그의 것임을”

시학(詩學)이라는 시입니다. “많은 답들이 있지만/ 우리는 물을 줄 모른다// 시는/ 시인의 맹인 지팡이// 그걸로 시인은 사물을 짚어 본다,/ 인식하기 위하여”

끝으로 <나와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검은 날개 달고 날아갔다, 빨간 까치밥 열매를/ 잎들에게는 남은 날들이 헤아려져 있다// 인류는 이메일을 쓰고// 나는 말을 찾고 있다, 더는 모르겠다는 말,/ 없다는 것만 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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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태

오늘도 사진과 책, 책과 사진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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