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시간

 

‘있을 법한 이야기를 꾸며 쓴 산문체 문학 양식’인 소설은 작가의 상상이 들어가서 보이는 것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있을법한 이야기라 개연성이 있다. 대하소설의 경우 등장인물의 생애, 가족의 역사를 사회적 배경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루기 때문에 독자는 경험하지 않은 시대도 이해하고, 다수의 등장인물로 관계의 다양함이 있다. 이처럼 소설은 내가 살지 않은 시대도 알게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 다가 아닐 수 있음도 보여준다. 소설을 읽다가 시간이란 무엇일까?로 생각이 흘렀다. 그러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시간으로 관심이 흐르고, 엉뚱하게 드라마 한 편이 소환되고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시집과 시가 생각나 다시 꺼내 읽었다. 시간을 생각하며 소개하고 싶은 이 세 권을 묶어본다.
 



『파친코 1,2 』

이민진 ∣ 인플루엔설 ∣ 2022 ∣ 388쪽/380쪽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재미교포 1.5세대가 썼다.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역사가 함부로 제쳐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역사적 재앙에 맞선 평범한 개개인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작가는 이야기로 역사를 보여준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고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사 놓고 오랫동안 묵혀 둔 이 책을 물리적 시간이 많아진 지금 꺼내 읽으며, 내가 살지 않았던 시간들을 거쳐, 내가 살았던 시간까지 작품 속 인물이 되어 그 시대를 살았다.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버블경제가 절정에 이르렀던 1989년 일본까지, 한국과 일본을 무대로 거의 100년에 걸쳐 펼쳐지는 시간들이 내 경험처럼 생생했으니 얼마나 잘 쓴 글인지 읽으면 안다. 어머니 양진과 함께 허름한 하숙집을 꾸리며 살아가는 열여섯 선자가 중심이지만 등장인물 모두는 다 주인공이다. 선자는 생선 중개상인 한수를 만나 그의 아이를 가졌지만 한수가 유부남인 것을 알고 그를 떠난다. 그런 그녀를 받아준 목사 이삭과 결혼해 오사카로 건너온 선자를 둘러싼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방, 한국전쟁, 분단 등을 경험한다.
물리적 시간 100년을 다루니 등장인물들은 많이 죽거나 늙는다. 짧게 등장하는 선자의 아버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남자로, 선자가 긴 세월을 살아내는 힘의 뿌리가 된다. 선자의 어머니 양진은 신산한 인생을 살지만 선자와 함께 하며, 나이가 들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에 반해 선자와 한수의 아들인 노아가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작가는 모든 삶이 그러하듯 죽음 역시 이유가 있고, 노아가 이승에서의 역할과 의무를 다했음을 알게 해준다. 그 밖에 선자를 선택한 이삭, 그의 형 요셉, 그리고 형수인 경희, 노아의 동생, 그리고 그의 아들 모두 그들이 살아낸 시대 속에서 각자 그들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
보이는 것, 경험한 것, 그리고 기록으로 우리는 존재를 확인하고 역사를 이해한다.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흐른다는 생각 역시 보이고 경험하고 기록된 것이 바탕이다. 그런데 작가의 상상력을 빌리지 않아도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면, 아니 알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과학적 이론들이 그 세계를 더 쉽게 더 많이 설명할 수 있고 그런 것을 바탕으로 내가 더 느꼈으면 싶다. 모두가 각자의 시간을 살고, 그런 시간 속에서는 이승에서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면 좋겠다. 긴 시간을 살아낸 듯 큰 숨을 쉬고 소설을 읽는 기쁨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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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 문학과 지성사 ∣ 2019년 ∣ 342쪽

은희경 작가는 생각과 감정을 글자라는 도구로 구체화시키고, 디테일하면서도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파친코를 읽다가 시간을 생각했고,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간의 강의를 듣다 우리 눈에 보이는 빛에 대한 물리학자의 설명을 들었다. 해서 『빛의 과거』라는 제목의 이 소설을 다시 꺼내 읽었다.
2017년, 중년 여성 김유경이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게 되면서,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리고, 30년의 시간을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유정이 2017년 현재, 자주 만나는 친구인 김희진이 쓴 소설 속 인물로 추정되는 000이 자신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데, 자신과 너무 다르게 표현되고 있음에 놀란다.
소설 속 소설을 쓴 김희진이 기억하는 기숙사 친구들이 자신의 기억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는 게 이 소설의 전개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영국 작가의 말을 인용해서 “우리가 아는 자신의 삶은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이다. 서로가 기억하는 면이 같은 경험에서도 달라, 놀라는 경우는 흔하디흔하다. 기억의 보잘것없음을 익히 우리가 알지 않는가? 공감이 간다. 이 소설을 읽다 나는 생각이 튀어 우리가 말하는 시간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분명 예전에 비해 물리적인 시간은 많아졌는데 내가 느끼는 시간은 많게도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몰라서 보이지 않았던 세계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경로가 많아 접하다 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인다. 물질의 이치를 연구하는 물리학이 인문학과 그리 멀지 않다는 강의는 신선하고 그래서 내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시간의 연속성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만든 개념이라는 설명이 이해가 되니, 평행세계를 구체화시키는 드라마와 영화가 더 친숙하고 반갑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아니 전부가 아니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지금의 나는 작가들의 상상력을 입고 드러내는 시간의 확장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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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김용택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 269쪽

이 시집은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 시인이 101편의 시를 엄선해서,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시의 원문을 싣고, 독자가 따라 쓰기 편하고 휴대 또한 간편하도록 구성했다. 마케팅도 편집도 모두 성공한 책이다. 표지도 필사할 때 불편하지 않도록 노트처럼 만들어져 책을 잡으면 오른쪽 여백에 필사하고 싶어진다. 필사하면 시가 더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고, 시인의 말대로 시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따라가다 내 슬픔을 별들이 가져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면서 시를 읽는다.
오래 사랑받은 시집을 새삼 꺼내 읽은 것은 제목 때문이었는데, 이 시집이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이 시집을 건네는 장면은 드라마 명장면으로, 지금도 바로 검색이 가능하다. 여주인공 김고은이 이 시집을 건네고 남주인공 공유의 근사한 목소리로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랑의 물리학>을 낭송한다. 천년의 시간을 넘나들고, 공간을 순간 이동하면서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를 그럴듯하게 그린 이 드라마를 두 번 보았고 이 시집은 드라마와 무관하게 읽었지만, 시간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과 이 시집을 묶은 것은 드라마 때문이다.
물질이란 사물을 말하고, 물리는 사물의 이치를 다루는 일이라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강의를 듣고서야 내가 물리학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알았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동영상를 통해 접하다 이 시집을 건네는 동영상이 따라 나왔다. 시집이 강렬하게 등장하는 드라마가 소환되면서 위 두 소설에서의 시간과 공간이 연결되었다.
김용택 시인은 시를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와 더불어 살아가게 한 엄청난 업적이 있고, 그의 그런 사명은 드디어 이 시집을 드라마에 등장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덕분에 이 시집은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게 되었고, 출판사는 재빠르게 다른 콘셉트을 추가해 시리즈 시집이 나왔다. 시와 시를 선정한 시인 김용택의 질문에 시를 읽는 독자가 답해 필사하게 해보는 방식의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플러스』 역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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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라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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