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 잠시 숨 고르며 내 마음을 둘러보는 건 어떨까요? 정신없이 달리느라 아픈지도 몰랐을 그 마음을 찾아서 지친 마음은 달래고 힘들고 외로웠던 마음은 토닥토닥 다독여 새해는 모두 건강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유난히 힘겨웠을 2024년의 끝 달, 고단하고 헛헛한 마음을 포근하게 보듬을 수 있는 마음 그림책 4권 소개합니다.
1.『마음 수선』
최은영 글, 모예진 그림 | 창비 | 2024년 | 48쪽
제목에 확 끌려 읽게 된 이 책은 마음이 조금씩 고장 난 사람들에게 전하는 최은영의 따뜻한 글에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우리 마음을 차분차분 가라앉히고 다독여주는 모예진의 그림이 보태어진 따스한 위로의 책입니다.
책장을 넘기면 마음 수선 가게 앞 긴 의자에는 고장 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위에 “고장이 났습니다. 가져가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쓰인 쪽지가 허술하게 붙어있습니다. 어딘가 쿡 찔린 듯 마음이 아파옵니다. 용기 내어 책속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고장 나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마음만 고장 나고 나만 아픈 것 같지만 그림 속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불안, 우울, 분노 같은 아픈 마음들이 담겨 있습니다.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아픈 순간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듯합니다. 마음이 고장 나면 비가 그칠 때까지, 바람이 멈출 때까지 잠시 쉬어가면 어떻겠냐며 다독입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온실 손잡이가 망가져 물을 줄 수 없어도 꽃은 화사하게 피어나고, 고장 나서 조용하던 뻐꾸기시계는 새들의 아늑한 안식처가 되어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읽는 내내 앞 면지에 내걸려 있던 그 쪽지가 마음 쓰였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덮으려던 순간, 뒷 면지에 고장 난 물건들은 다 사라지고 “괜찮습니다.”만 남은 쪽지를 보니 내 마음도 괜찮아졌습니다. 살다 보면 더러 마음이 고장 날 때가 있습니다. 상비약처럼 이 책을 곁에 두어도 좋지 않을까요?
2.『감정 호텔: 내 마음이 머무는 곳』
리디아 브란코비치 글ㆍ그림, 장미란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 40쪽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감정들을 ‘호텔’을 찾아오는 손님에 빗대어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감정 호텔에는 목소리가 아주 작은 슬픔, 엄청나게 시끄러운 분노, 주목받기 좋아하는 불안 같은 까탈스러운 손님부터 사랑과 감사, 기쁨처럼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고요한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감정마다 원하는 것이 달라서 호텔지배인은 날마다 찾아오는 감정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며 세심하게 살피고 다독입니다. 아무리 까다로운 손님이 찾아와도 거부하거나 떠나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지배인의 시선을 따라 호텔에 찾아오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만나다 보면 감정들의 속성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 것이라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 미숙해서 불편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감정들은 오고 싶을 때 오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난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어떤 감정이 찾아오든 언젠가는 떠나기 마련임도 알게 되지요.
여행에서 경험한 다양한 감정들을 모아 소재로 쓴 이 책은 리디아 브란코비치의 첫 작품입니다. 신인 작가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감정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 주어 세계 25개국 이상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책은 감정이 휘몰아칠 때마다 곁에 두고 수시로 펼쳐보면 좋을 인생 책입니다. 올해와 작별하기 전, 내 안에 찾아온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까다롭고 불편한 감정은 조심스럽게 보살펴 조용히 이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급하게 떠나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언젠가는 떠나기 마련이니까요.
3.『아름다운 실수』
코리나 루켄 지음, 김세실 옮김 | 나는별 | 2018년 ︳56쪽
하얀 면지에 실수로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눈으로 그립니다. 그려보니 한쪽 눈이 더 커졌습니다. 감추기 위해 동그란 안경을 씌웠습니다. 그러고 나니 두 눈이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 가려지는 듯해 괜찮아졌지요. 이후에도 아이는 팔꿈치를 뾰족하게 그리거나, 목을 너무 길게 그립니다. 무슨 동물인지 알 수 없게 그리기도 하고 하얀 종이를 잉크로 얼룩지게 하는 등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어색한 신체 부위는 레이스 등의 장식을 그리거나, 동물은 커다란 바위로, 잉크 얼룩은 나뭇잎을 그려서 덮습니다. 이렇게 아이는 아주 작은 부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이어가고 마침내 두 면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 가는 그림책입니다.
하얀 면지에 연필, 검정 잉크, 색연필, 수채물감으로 섬세하게 그린 이 책은 코리나 루켄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첫 작품으로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입니다. 작가는 셀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실수를 통해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수하고 또 실수하며 삽니다. 실수하면 후회하고 자책하고 때론 좌절하기도 하지요. 실수가 실패는 아닌데도 말이죠. 아이처럼 반복되는 실수를 통해 더 좋은 방법을 찾고 지혜를 배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실수는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오늘의 실수가 모여 내일은 더 눈부시게 빛날지도 모릅니다. 실수,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4.『어떻게 여행 가방에 고래를 넣을까』
라울 니에토 구리디 글ㆍ그림, 김정하 번역 | 주니어김영사 | 2022년 ︳32쪽
이 책은 작은 아이의 독백으로 시작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작은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가장 좋아하는 고래를 데려가기로 하지요. 어마어마하게 커서 두 손으로 힘겹게 떠받쳐 들어야 하는 붉은 고래를 말입니다. 아이는 그 큰 고래를 어떻게 가방에 넣을까요? 작은 가방에는 도저히 넣을 수 없을 듯한데 말이죠. 아이는 떠나고 싶지 않은 고래를 다독이며 담아가기 위해 무척 애씁니다. 마침내 차곡차곡 접어서 가방에 넣게 되지요. 그리고는 가방을 들고 여행을 떠나는 행렬에 줄을 섭니다.
이 책의 작가는 라울 니에토 구르디는 「두 갈래 길」로 2018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후 「어려워」 「어마어마한 거인」 「말」 등을 통해 내면 이야기를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낸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전쟁이나 내전 등으로 태어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이주하게 된 난민들에게 보내는 헌사입니다. 책을 읽으며 아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살던 곳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난 무엇을, 어떻게 가져가고 싶은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져가고 싶은 것들은 엄청 많은데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란 생각이 들자 표지 그림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은 기억과 추억으로 삽니다.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많은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 회복탄력성이 좋아 쉽게 일어납니다. 낯선 곳으로 떠나서 두렵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차곡차곡 접어서 가슴에 담아간다면 힘든 순간 이겨낼 힘을 얻지 않을까요? 그걸 바탕으로 거기에서도 좋아하는 자유, 용기, 추억, 사랑 등을 담은 나만의 고래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우린 2024년과 곧 작별하고 2025년으로의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여행 가방에 꼭 넣어가고 싶은 고래가 있나요? 그 고래가 당신에게 큰 위로와 의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어른 그림책 연구모임
어른그림책연구모임 – 김인희
그림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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