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BOOK학교>탐방기④- 책과아이들




본 글은 2021 60+책의해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프로그램을 취재한 글입니다.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생애사 쓰기 – 책과아이들에서 진행)



‘부산은 여전히 더웠다.’

 

커다란 대문을 한 번 지나쳤다. 지도에 있어야 할 자리에서 서점 입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뒤돌았을 때 한 건물을 봤다. 저기에 서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야말로 대문이었다. 너무 넓었기 때문에 오히려 서점 입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커다란 대문과 흔들 벤치가 있는 정원. 얼핏 봐도 5층은 넘을 것 같은 건물이었다. 오래전에는 저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1층에 가게를 열었을지도. 정원을 고려한다면, 갈비집이나 아니면 꼼장어 집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엇이든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아주 작은 곳에서 큰 변화를 불러온다. 만약 고기집에 어울린다 생각한 건물이, 아니 오래된 저택이라 생각한 건물이 서점이었다면 어떨까.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조심스럽게 정원에 들어선다. 안쪽 건물은 정원 쪽을 향해 통유리로 되어있었다. 사람들이 크게 둘러앉아 책상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쓰거나 그리고 있다. 입구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 안으로 서로 들어가려고 장난치는 것만 같다.
 

“담벼락엔 붉게 문들 담쟁이덩굴이 붙어 있었네.
진노랑의 밝은 햇빛이 비치고 있던 하얀 벽 위의 그 담쟁이덩굴은 마치 붉은색 유니폼처럼 빛나고 있었지.
내게 어떻게그 일이 일어난 건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그 장면만큼은 아주 인상적이었다네.
초록색 문 밖의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 위엔 마로니에 잎들이 떨어져 뒹굴고 있었지.
그 잎들은 아직 갈색으로 변하지 않고 황록색을 띠고 있었는데.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게 분명했어.
그건 그때가 아직 시월이라는 얘기지.
해마다 그 무렵이 되면 난 마로니에 잎들을 주우러 다녔으니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때 내 나이는 다섯 살하고 4개월 째였을 거야.”

(허버트 조지 웰스, 「벽 안의 문」, <마술 가게>, 바다출판사.)   

 

나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벽 안의 문’을 떠올렸다. 물론 그 소설의 결말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지만 우리가 찾는 풍경임에 있어 공통점을 지닌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만났던 장소, 어른이 되어도 계속 꿈꾸는 장소라는 점에서 이보다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는 어린이 책이라는 개념을 몰랐다. 시골이라 그랬던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서점 대표님께서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책이 활성화된 것이 90년대 초반이라 이야기해 주셨다. 그러니 유년기에 어린이 책을 접하지 못한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 어린이 책을 접한 사람들이 좀 더 문화적으로 유복했던 것일지 모르겠다. 80년대에는 부모가 아닌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도 있었으나. 비슷한 경험과 사고를 공유하는 마을에서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전해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런 지점에서 이러한 건물은 아이들에게 꿈의 공간이며 다른 세계와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서점은 처음 만나는 경험이다. 이후 문을 통과하면 숨겨져 있던 내부가 한눈에 펼쳐진다. 복층형 서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이렇게 사소하지만 특이한 구조에 얼마나 호기심을 가졌던가. 서가와 서가 사이 구석구석에는 마치 보물이 자리 잡고 있거나 숨겨진 문이 있을 것만 같다. 숨겨진 문을 연다면 우리는 환상의 세계에서 또 다른 환상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2층부터는 다양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들이 있다. 아이들은 함께 또는 따로 동화책을 읽는다. 마치 영상을 보는 것처럼 스크린에 투영된 책을 읽는 것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경험이다. 5층에는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에서 아이들은 눕거나 엎드려 자유롭게 굴러다닌다. 여느 엄숙한 전시관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훗날 전시관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에티켓을 가르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유롭게 행동한다. 전시관에서 아이 한 명의 소음이 얼마나 시끄러운지를 떠올려 보면, 이 풍경에서 묻어 나오는 소리들은 소음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워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나와 굴러다니는 아이들이 이질감 없이 섞여 들어간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체화하는 것이다. 문화와 교양은 특히나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장소는 부모가 알려주지 못하는 어떤 지점들을 대신 알려 줄 것이다. 학원이나 유치원보다는 사적이며, 가정보다는 공적인 공간이다.
 

‘그야말로 이름처럼 책과 아이들의 공간이다.’

 

이러한 장소에 시니어라고 불리는 중장년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오늘은 실습시간이라 조용하다. 모두 백지에 자신만의 세계를 쓰고 그린다. 아마추어들이 그렸다고 상상하기 힘든 멋진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만드는 그림책은 손자손녀들을 위한 것일까? 자신들을 위한 것일까? 두 가지 이유 모두 정답이다. 아이들을 표방하는 공간이지만 아이들만의 공간은 아니다. 사회에서 아이들만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서점은 아이들을 위하면서도 세대 간의 연결고리로 그곳에 있다.

만약 어린 시절 집 근처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른 모든 서점을 이곳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 노년을 맞이해도 이 서점이 지금 모습 그대로 여기 자리 잡고 있으면 좋겠다. 마치 현실과 꿈의 경계를 이어주고 있는 느낌으로 말이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높은 천장의 탁 트인 교실에서 바라본 정원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나는 문을 열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 간다.
아이들의 추억은 기억에 새겨져, 그림 속의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이태형

소설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매직리얼리즘을 접하고 유년 시절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삶은 언제나 환상보다 놀랍고 잔인하다.
지은 책으로 불신에 대한 내용을 그린 『그랑기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