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BOOK학교> 탐방기① – 책방 노른자




본 글은 2021 60+책의해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프로그램을 취재한 글입니다.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생애사 쓰기 – 책방 노른자에서 진행)


찾았다! 노른자!

 

5호선은 유난히 깊다.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를 때 한강 아래를 지나기 때문일까. 전철에서 내려 입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몇 번이나 반복된다. 당신이 5호선에 익숙하지 않다면 과연 출구가 나올까, 그런 걱정을 잠시 할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을 반복해 오르고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가장 커졌을 때 불현듯 출구가 나온다. 의외의 장소에서 지인을 마주친 기분이다.

영등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건물의 그림자가 도로를 반으로 가르고 사람들은 그늘 쪽으로 걷는다. 도로 한쪽으로는 고층건물이 이어지고, 길 건너로 이제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단층의 집들이 이어진다. 상반된 분위기의 길을 조금 걷다 보면, 단층 건물은 아닌 그렇다고 고층건물이라고 볼 수도 없는 4층 정도의 건물이 낯설게 서 있다. 옛 거리에 스며든 현대적 분위기. 변해가는 서울의 풍경을 증명하듯 서 있다. 그 건물의 1층에는 ‘담배’가 크게 쓰인 오래된 슈퍼가 있고, 옆으로 건물 입구의 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찾았다! 노른자!’

책은 아이와 어른 사이에 놓인 다리다.
아이는 책을 통해 성장하고
어른은 책을 통해 자기 안의 아이와 마주한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 서로에게 다가간다.

 

건물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입구를 보며 말한다.
 “여기 서점이 있나봐.”
 “안에 들어가면 예상하지 못한 내부가 나오는 거 아냐?”
 “저 위에 그림책이라 쓰여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대화하는 사람들. 그들은 아마 큰 계기가 없는 이상 서점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건물의 2층에 있는 서점이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의식의 공간이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쇼윈도로 엿볼 수 없는 공간. 그렇기에 반대로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안식을 주는 장소.

건물로 들어서면 화장실 문에 포스터가 붙어있다.
 ‘책은 아이와 어른 사이에 놓인 다리다. 아이는 책을 통해 성장하고 어른은 책을 통해 자기 안의 아이와 마주한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 서로에게 다가간다.’
같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의 그림. 덩치가 큰 사람과 덩치가 작은 사람. 둘은 같은 책을 본다. 둘 중 누가 연장자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책을 읽으며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중일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팬으로 직접 쓴 글씨로 ‘2F’가 적혀 있다. 문에는 노른자 책방이라는 글씨가 쓰인 종이가 붙어있고, 왼쪽 위 벽에 노란색의 커다란 장식이 걸려있다. 그것은 쉼표처럼 생겼다. 그곳이 바로 ‘노른자 책방’이었다.

생애사를 쓴다는 것

 

건물 안 포스터에 적힌 문구처럼, 책을 통해 세대 간의 다리를 이으려는 철학을 가진 장소.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들 사이에서 연배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강사는 연장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한 사유의 방향을 배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여기에서 무엇을 쓸 것인가.

생애사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볼 수 있을까. 감히 어떤 거창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삶을 기록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였고, 필요를 생각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인간의 발전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쓰고 싶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관해 쓰고 싶다는 욕망은 ‘노른자 책방’에서 만나, 조금 더 구체화 될 것이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쓰려는 열망과 그에 따른 노력은 자신을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 이 매력적인 장소에서 만나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쓴다는 행위의 막연한 관념을 넘어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퇴고는 계란에서 노른자를 골라내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자신의 삶에서 노른자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아주 쉽게 의미를 찾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매번 노른자를 골라내기 전 터져버려 흰자와 섞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흰자의 가치가 없는 것 또한 아니다. 쉽게 의미를 찾는다고 해서, 아니면 반대로 그 의미를 당장 찾지 못한다 해도 각자의 수업시간에 우열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물질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현실에서 자신의 내면을 살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글을 쓰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과거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기록된 삶은 다시 현재가 되어 작가와 함께 살아간다. 생애사를 쓴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시간을 내 서점에 온다는 행위는 서로가 서로를 통해 어제보다 더 성장하는 자리가 된다.

 

노른자와 흰자가 함께하는 장소인 ‘책방 노른자’는 리베카 솔닛의 책과 이기리 시인의 시집 그리고 고영직 평론가의 글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 되며. 그 자리에 생애사를 쓰려는 어른들의 글이 더해질 것이다. 서점의 내부는 당신이 직접 방문하여 확인하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만남과 작별을 위해 함께 인사하자.

안녕! 흰자! 찾았다! 노른자!

이태형

소설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매직리얼리즘을 접하고 유년 시절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삶은 언제나 환상보다 놀랍고 잔인하다.
지은 책으로 불신에 대한 내용을 그린 『그랑기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