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BOOK학교>탐방기⑤- 함덕32




본 글은 2021 60+책의해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프로그램을 취재한 글입니다.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생애사 쓰기 – 함덕32에서 진행)


우리는 수평선에 매혹된 것이리라.

 

 수평선이 보이는 창을 열고 커피를 마신다. 여름이면 서핑보드를 들고 해변으로 나갈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버켓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맥주를 두세 개 담아 모래사장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것도 좋으리라.
 
당신은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사는 것에 로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사는 것에 로망을 가지고 있다. 왜? 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들은 딱히 이유랄게 없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니깐. 로망이란 게 대부분 그런 거 아닐까.
 
허나 바닷가에 살면 불편한 점이 꽤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염분이다. 항구도시에서 운행한 차량은 중고가가 내륙에 비해 차이나게 낮다는 말도 들은 적 있다.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끈적이는 느낌은 굳이 바닷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느껴질 때가 있다. 대부분은 신경쓸 정도는 아니지만 특히 예민하게 느끼는 날이 있다. 그런 불편함을 머리로 알고 있더라도 우리는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것에 로망을 가진다. 물론 어부가 될 생각은 없을 것이다. 단지 우리는 수평선에 매혹된 것이리라.

 함덕32는 말 그대로 함덕 32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 제주시 조천읍 함덕로 32’ 이 공간이 위치한 주소다. 정면에는 가족 단위로 방문할 법한 오래된 대형 리조트가 있고, 조금만 내려가면 함덕해수욕장이 나온다. 행정구역은 제주시라 되어 있지만, 제주도의 각 마을은 독특한 독립성을 지닌다. 남과 북으로 제주시 서귀포시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 보니 동쪽이나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제주시민이나 서귀포시민이라는 자각은 좀 옅게 가진다.

 함덕은 관광지 성격이 강한 곳이다. 그런데 또, 제주에서 유명한 관광지라 볼 수는 없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관광지치고는 드물게 주민과 관광객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지역이다.


‘생애사는 나의 이야기면서, 내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내 부모의 이야기이다.’

 

함덕32는 그런 지역적 특색에 어울리게 주민과 관광객들 모두를 대상으로 문화행사를 진행한다. 여행을 와서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리라. 또한 시내에 비해 문화적으로 거리가 있는 이 동네에 이러한 문화공간은 주민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을 전달한다.

입구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 마치 사적인 공간 또는 회원제 클럽의 분위기를 풍긴다. 아는 사람만 들어오라는 듯 방문객을 테스트한다. 어떤 공간은 최소한의 관심을 갖고 준비된 사람이 방문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해주려는 듯 하다. 확실히 아무나 들어오세요, 라는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2층에 올라가 보면 이 공간이 열려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처음 방문에도 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장소가 있다. 강의실에 들어서면 카운터 위로 모형 비행기가 한 대 떠 있다. 당신이 외지인이라면 높은 확률로 비행기를 타고 왔을 것이고, 그 비행기는 일상과 여행의 경계에서 당신이 이 공간을 쉽게 받아들이게 해준다.

이곳은 서점이라기보다 자체로 문화공간이며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장소이다.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곳. 성능 좋은 스피커가 울림을 주는 곳. 이곳은 문화를 통해 관광지와 삶의 터전을 이어주는 건물이다.
 
생애사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애사는 나의 이야기면서, 내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내 부모의 이야기이다.




‘너무나 오래 전의 일,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한 참여자는 아이를 제때 공부시키기 위해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며 목이 메 낭독을 잠시 멈춘다. 단추 하나를 잘못 끼우면 바로 잡기 힘든 것처럼, 본인이 공부 때를 한 번 놓쳐 계속 어긋났던 기억이 있었던 것일까. 시간은 우리의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따라가려 아이의 시간을 위해 자신을 얼마나 희생했을까.

 다른 참여자는 제주에서 목포로 시집가서 시집살이했던 이야기를 세밀하게 재현한다. 그 시절 시어머니들은 왜 자신과 같은 입장이었던 며느리에게 그렇게까지 가혹했던 것일까. 남편은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면 애틋한 마음 뿐, 아내에게 모질게 굴었던 어머니의 모습은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제주에 있었던 가장 큰 비극인 4.3에 대해 말한다. 오랫동안 몰랐던 비극에 대해 이제 조금은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 간신히 그 비극에 대해 진술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기 때문일까. 너무나 오래 전의 일,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여기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우리는 관광지에 대해 생각할 때. 잊는 것이 있다. 현지인의 삶과 역사보다는 눈에 보이는 즐거움만을 따른다. 함덕에는 지금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4.3 성터가 있다. 사람들을 가두고 통제했던 성터. 우리의 기억은 때론 왜곡되거나 미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기록되어야 한다.

 생애사 쓰기란 그런 것이다. 내 기억을 재현해 내는 것. 한 사람의 기억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기록되고 쓰인다면, 우리는 보다 더 생생한 역사에 다가갈 수 있다. 한 편 한 편은 개인의 삶이지만 그 기록들이 모인다면 그것은 우리의 역사가 된다.

 때론 표피에 드러난 모습보다 의미가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장소일지도 모르고, 건물일지도 모르며 또는 서점이나 문화공간이라는 정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는 ‘함덕32’이다. 그것 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이곳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물론 제주를 4.3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때론 잊고 싶어도 빼고 생각하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일들이 있다.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될 수 없는 일일수록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을 도와 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태형

소설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매직리얼리즘을 접하고 유년 시절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삶은 언제나 환상보다 놀랍고 잔인하다.
지은 책으로 불신에 대한 내용을 그린 『그랑기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