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대가 60+글자로 건네는 책 이야기> 4차 우수작 소개


<60+세대가 60+글자로 건네는 책 이야기> 5차 모집 중 (12/6(월) ~ 12/26(일))

상세 내용 확인 및 신청 링크: https://60book.net/60bookstory/


심사위원 심사평


11월에도 귀한 글들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독후감 하나하나 긴 글이 아님에도 여운이 길었습니다. 규정상 60편을 골라 6편만을 우수작으로 선정해야 하기에, 감동적인 작품이 많았던 11월은 유난히 고민이 깊었습니다.
우수작 선정 기준은 늘 같습니다. ‘60글자 이상이면서 깊은 여운이나 감동을 주는 글, 작품 이해가 깊고 표현이 성숙한 글, 어리숙한 듯하지만 진솔하고 실천성이 돋보이는 글’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작품이 이에 해당하기에 이들 중 몇 편을 고르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몇 번을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러다 독후감만으로도 책의 내용이 잡혀지고 그 감상에 동화가 되어지는, 감동이 진한 작품을 고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관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혹여 선정이 되지 못했다 해서 큰 실망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귀한 책들을 소개해주시고 소감을 함께 나눠주신 모든 참여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백화현 선생님

책을 읽고 60자 이상의 짧은 소감을 작성하여 보내주신 많은 양의 글을 보며 책을 많이 읽는 60+ 세대와 아직도 책 읽기가 쉽지 않은 60+세대가 책으로 소통할 수 있음을 기대합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읽고 서평을 보내주셔서 매달마다 기대감이 컸습니다. 지금까지 보내주신 서평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책을 소개 받고 내가 읽고 쓴 서평으로 누군가에게 다시 그 책이 소개될 거 같아서 책읽기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용기를 낼 때 책 읽기가 힘이 된다는 내용도 좋았습니다.
‘60+세대가 60+글자로 건네는 책 이야기’ 이벤트에 참여하신 서평 중 6편의 우수작을 선정했습니다. 11월에 보내 주신 글들은 대부분 훌륭한 표현과 열정을 쏟은 흔적들이 보여서 6편 고르기가 어려웠습니다. 우수작 6편은 ‘내 언어로 내 삶을 표현한 책이야기’로 어렵게 선정했습니다.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리며 우수작을 6편만 뽑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도 전해드립니다 – 김동헌 선생님

1. 안창호 (책 제목 : 겁쟁이 빌리 / 저자 : 앤서니 브라운 / 출판사 : 비룡소)


소감문 전문:

 손자와 함께 걱정인형을 만들면서 
 –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빌리>를 읽고 –

영국의 작은 마을 아담한 집에 8살 빌리와 다정한 엄마, 아빠가 살고 있었다. 빌리는 언제나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걱정을 하며 다니는 심각한 소년이다. 빌리는 모든 것이 걱정거리이다. 대체 빌리를 괴롭히는 걱정이 무엇인지 만나러 가볼까. 

잠잘 때 신발이 도망갈까 걱정, 잠자고 있는데 구름이 와서 비가 내릴까 걱정, 큰새들이 날아와서 자기를 물어갈까 걱정 등등 온갖 사소한 것까지 다 걱정을 하는 아이였다. 다정한 부모님은 언제라도 지켜줄 것이라며 빌리를 안심시키지만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느 날 할머니집에서 자게 된 빌리에게 “나도 어렸을 땐 그랬단다”라고 할머니는 위로하며 걱정 인형을 만들게 한다. 자신의 불안한 걱정거리들을 인형에게 털어놓고 편안하게 지내게 되지만 걱정으로 인해 인형들이 자신처럼 불안해 할 것 같은 생각에 빌리는 걱정인형의 걱정을 덜어줄 새로운 인형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간다.

부모나 어른인 우리들은 아이들의 사소한 걱정과 불안에 대해  괜찮다고 치부하며 때론 쓸데없는 짓이라는 비난하고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빌리의 걱정에 대해 “나도 그랬단다“라고 인정해 주는 할머니처럼 공감해 주는 것은 모두를 대하는 심리상담을 배우는 치료자의 자질로써 바른 자세인 것 같다.

또 빌리는 자신의 걱정을 덜어낸 것에서 그치지 않고 걱정을 안고 살아갈 인형들에 대해 배려하고 이해하며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가는 창의적인 사고는 인류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 사회를 만날 바람직한 면임을 보여준다. 부모나 어른은 사랑하는 아이들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 하기 보다는 스스로 깨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도서관 수업을 받던 그날 저녁을 먹고 손자와 거실에 앉거나 배를 바닥에 업들기도 하면서 걱정인형 만들기에 같이 낑낑거렸다. 내가 쓰고 남은 붉은색 아이클레이로 손자가 우선 장미잎 두장을 아주 탐스럽게 만들었다. 혹뿌리 영감처럼 걱정인형에 붙일 거라며 참 진지했다. 더구나 휴대폰으로 자기의 활동모습도 깜찍하게 찍어 달랬다. 인형 이름도 손자가 정한  ‘멋쟁이’라고 짓고 아직 한글이 써툴기에 할아버지가 먼저 써준 글자를 보고 도화지 아래 칸에 보고 따라 써서 가위로 그 부분을 잘라 인형에 붙였다.

할아버지가 수업 중 만든 인형과 비교해보니 손가락과 머리카락를 섬세하게 표현한 손자가 더 잘 만들었기에 칭찬 상으로 거실에서 2분간 어부바하고 업어주었다. 00아, 너는 걱정꺼리가 있냐? 무엇인지 말해줄래? 걱정이 있으면 인형한테 말해줘 등 얘기를 나누며 인형 하나, 이름 글씨를 만들다가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냥 몰입하는 손자의 모습이 대견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손주는 그 시간동안 TV를 보겠다는 말도 안했고 실제로 안 봤다. 만들기를 끝내고 치카치카 양치하고 직접 만든 걱정인형 멋쟁이를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고  아무런 걱정 없이 상상의 별이 가득한 꿈나라로 간 손자가 너무 예쁘다. 칭찬카드 하나 쭉 뽑아 좋아하는 음료수와 함께 잠든 머리맡에 둔다.

이것이 내가 독서치료를 배우는 보람인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왜냐하면, 통합문학치료를 통하여 다양한 활동과 상호작용으로 자신의 변화는 물론,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마음열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힌다는 학습목표에 부합하니까.  나도 잠자리에 들면서 “아이들은 어른하기 나름이다”라는 평범한 진리의 말을 떠올리며 평온해진 얼굴로 빙그레 웃음지었던 ‘선물같은 하루’였다. 걱정인형을 걱정해 주는 걱정인형을 새롭게 만든 지혜로운 빌리가 있어 더욱 고마웠다.

2. 박태규 (책 제목 : 긴긴밤 / 저자 : 루리 / 출판사: 문학동네어린이)


소감문 전문:

아이들 책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문득 손이 가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림이 유난히 쓸쓸해서인가, 이즈음 내 밤이 길어서 인가, 아무튼 아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내가 읽게 되었습니다.
‘노든’이라는 흰코뿔소. 지금은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 코뿔소가 왜 자꾸 나를 보듯이 맘을 짠하게 하던지요. 
내가, 우리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많아서 치이고 대접 못 받다가 글쎄요…. 세월이 더 많이 흐르고 그 시절 산 사람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애틋한 존재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러기 전까지 나보다 어린 세대는 자꾸 옛 말이나 한다 하고 말이 넘치면 군내 나는 늙은이가 수다스럽다 하겠지요.
하여간 우리 때는 그랬습니다. 귀하지 않고 많기만 하던 세대,
비 온다고 우산 받쳐주는 어른 하나 없이 빗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그저 그렇게 마냥 악착스럽게 살기만 하다 보니,
나를 둘러싼 따뜻한 것들은 언제인지 차츰 차츰 사라지고 팍팍한 세상과 호되게만 받았던 인간 대접에 대한 분노만 남았더라구요. 
그래도 여리고 따뜻한 것들을 위해 화도 누르고 분노도 누르고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문득 세상이 모두 애처롭고 아쉬워 두고 떠나기 아쉬운 미련만 덜렁덜렁 늘어납니다. 
아직도 무언가 해야 할 것이 남은 거 같습니다.

화를 누르고 바라보는 밤하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막의 길. 바다를 향해가는 긴 길.
어쩌다 보니 내 책임이 된 어린 펭귄을 위해 분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것.
이게 인생인 건가 생각했습니다. 
피를 흘렸건 어쨌건, 갇히고 뼈 잘리며 살았건 어쨌건, 
‘노든’이 기억하는 인생에는 
부드러운 코끼리들의 코도 여린 피부에 새긴 듯 남아있고 
가버린 아내의 모습과 아직 뿔도 못 여문 채 떠난 아기도 노든의 심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편견을 무릅쓰고 얼룩 알을 오롯이 지켜낸 두 아비 펭귄의 눈물과 끝까지 이름 없이 남은 “나” 펭귄까지 그렇게 아롱져 남아있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솟구치던 열정도, 불의에 떨쳐 일어나던 의기도, 가족을 위해 한없이 쪼그라들고 비겁해졌던 아픈 기억도 그렇게 나에게 남아있습니다. 귀하지도, 지켜내야 할 마지막 남은 안타까운 존재이지도 않지만 나도 ‘노든’처럼 그런 긴 긴 밤을 보냈더랍니다.

3. 정낙민 (책 제목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저자 : 야마구치 슈
/ 출판사 : 다산초당)


소감문 전문:
 
저자는 철학을 배움으로써 얻게 되는 것들을 펼쳐보였다.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우리 삶에 중요한 물음에 강력한 해결수단이나 현명한 생각 법을 제공해주고,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의식적으로 비판하고 고찰하는 지적 태도와 관점을 얻게 해주고, 과제를 접함으로써 눈앞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고찰하게 해주고, 같은 비극을 토대로 얻은 교훈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도. 

책 속에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가 되는 철학을,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여 가지 철학,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철학을 현실에 필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로, 보통 철학입문서와는 사뭇 다른, 그래서 부담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시간 축에 따른 목차구성에서 벗어나 사람, 조직, 사회. 사고에 철학자들의 남긴 다양한 개념을 더해줌으로써 실질적인 힘을 갖게 해주고 있다.
 
철학하면 우리 생활과는 거리가 먼 학문으로, 괜히 겁부터 지레 먹게 된다. 그러면서도 나이 들수록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그러다보니 철학으로 마음이 향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잠시 주춤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거나 한 숨 쉬곤 하는데 이런 나에게 이 책은, 철학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시간을 되짚어보는 것은 물론 막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마치 어렸을 때 라디오 속이 궁금해 각종 도구로 분해해보고, 다시 조립해나가는 것 같은, 뿌듯함도 갖게 해주었다. 그럼으로써 보다 넓은 시야로, 보다 깊은 사고로 내 삶을 꾸려가게 해주는 든든함으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함께 하며 대충 뭉뚱그려져있던 자신을 하나하나 분해해가는 후련함을 느꼈다. 삶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준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물론 주변 사람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면 주변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는 게 전부였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문제는 바로 자신을 좀 더 깊고 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저자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자신이 바뀌고 성장하려면 안이하게 알았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경계함으로써 새로운 깨달음과 발전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나와는 상관없이 통례로 사회전선에서 한 걸음 물러난 지금,  아무런 발판도 없이 미래를 예측하기 보다는  진보는 나선형 발전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한다. 한층 더 정밀하게 세상을 현상과 이치를 파악하기 위해 어휘력을 길러 사고의 폭을 넓혀감으로써 여유로운 삶을 꾸려갈 수 있어야 한다. 
 
묵혀둔 숙제를 시작해본다. 철학을 무기삼아.

4. 강창휘 (책 제목 : 무진기행(김승옥 소설집) / 저자 : 김승옥 / 출판사 : 민음사)


소감문 전문:

최근 9시 뉴스에서 한국문학에 대해서 소개하는 부분을 유심히 봤었다. 한국문학을 소개해 주는 뜻깊은 시간을 갖게 돼서 꾸준히 시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달 전에 김승옥 선생님의 ‘무진기행’이 소개되었었다. 그러다가 몇 주 전에 새벽녘에 과수원으로 올라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안개를 마치 주게 되었다. 아침해가 뜨면 자연히 사라질 안개지만 조심히 걸어서 올라가면서 다시금 ‘무진기행’을 떠올리게 되었다. 안개를 마주하며 ‘무진기행’ 속 주인공은 무엇을 느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게 되었다.

‘안개’가 어떤 의미일까? 서울은 아내가 있는 현실적 공간이고 무진은 고향이자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던 공간, 그리고 결국은 이상향이 사라지는 공간으로 변함을 깨달았다. 어쩌면 청년이었던 나 자신도 고향을 떠나고 싶었고 그 청춘의 불안감, 방황이 안개로 투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결국 진짜 어른들의 세계, 현실적인 공간으로 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 내 젊은 시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고향을 떠나고 싶어 했던 내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고향에서 직장 생활하며 퇴직을 했고 과수원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그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금 안갯속을 향해서, 안개를 맞닥뜨려 갈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5. 송인자 (책 제목: 데미안 / 저자: 헤르만 헤세 / 출판사: 민음사)


소감문 전문:

<70에 다시 읽은 데미안>

헷세의 데미안을 70의 나이가 들어 다시 읽었다. 고등학교때 분명 읽었는데 이런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라는 데미안의 짧은 문장만큼 선명하고도 강렬하게 입력된 또다른 문장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만난 데미안은 잠들어 있던 내 안의 여러모습을 마주하게했다. 평범하고 온순해 보이면서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모든 상황과 문장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데미안이 내게 속삭이듯 말한다. 누구도 자신의 존엄을 의심해선 안된다고, 어떤 꿈이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말이다.

이 나이에 꿈이란 말은 맞지않는 옷처럼 항상 부끄럽고 불편했다. 그런데 데미안은 인생에 대해 새로운 기대와 꿈꿀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했다. 나이와 세월을 뛰어넘어 경이롭고 소중하며 진정한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을 데미안에게 배우고 있다

6. 강영심
(책 제목 :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 저자: 이상국 / 출판사: 창비)


소감문 전문:  

  도반(道伴)

   비는 오다 그치고
   가을이 나그네처럼 지나간다
   나도 한때는 시냇물처럼 바빴으나
   누구에게서 문자도 한통 없는 날
   조금은 세상에게 삐친 나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 가 짜장면을 사준다.

   양파 접시 옆 춘장을 앉혀놓고
   저나 나나 이만한게 어디냐고
   무덤덤하게 마주 앉는다.

   그리운 것들은 멀리 있고
   밥보다는 다른 것에 끌리는 날
​   그래도 나에게는 내가 있어
   동네 중국집에 데리고 가 
   짜장면을 시켜준다.
​ 
 – 시집[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중에서

이 시집을 읽을 때 ‘시 아저씨’와 함께 꽂힌 시가 바로 ‘道伴’이다. ‘도반’이라는 명사를 좋아하기도 한다. ‘함께 수행하는 벗’이 ‘도반’인데 자신과 자신을 도반이라 칭할 수 있는 반전이 뭉클하다. 
   
‘짜장면’이 우리에게 주는 여러 가지 이미지 중 가장 대표적인 건 ‘졸업식’과 ‘이사’일 것이다. 졸업도 그렇고 이사도 그러한데 있던 곳을 떠난다는 의미심장한 날에 검고 반지르르한 짜장에 면을 비비고 섞는 엄숙한 행동은 작별의 쓸쓸함과 새로운 곳을 마주할 희망의 기대감을 버무려 먹는 것이다. 노년을 향해가는 어느 지점의 쓸쓸한 생일도 그러하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의 주인공이 아닌 그러나 아직은 살아있는 자신의 나날을 기대하면서 위로하듯 ‘짜장면’을 시켜준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내가 나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와 포만의 ‘짜장면’ 한 그릇은 나그네처럼 지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을 닮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려니 쓸쓸하고 등골이 서늘하기도 하지만 내가 나한테 가장 든든한 친구이고 평생을 투닥거리면서도 보다듬고 부축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던가. 나도 나한테 ‘짜장면’에 ‘빼갈’까지 사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
   
늙어가는 처사가 가득한 시집 안에는 시를 생업으로 평생을 살아온 시골 아저씨의 시를 향한 곡진한 애정이 넘쳐흐른다. 아직 만나지 못한 말들을 만나고 있는 순정한 시인이 저물어도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 가만가만 걷고 있다. 도반과 함께 그 걸음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그나저나 戀詩(연시)에 혹하던 내가 언제부터 초겨울을 걸어가는 노인의 뒤태같은 이런 시를 읽게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뒤태도 언제나 나를 향해 등을 내어주시던 할머니를 닮아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