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 감각이 없어 지도를 잘 못 본다. 그 부족함 때문에 그림을 감상할 때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구도를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한자를 익히는 일도 어렵게 만든다. 음치에 박치라 노래도 못하지만, 리듬을 요구하는 많은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이처럼 나에게 취약한 부분은 살아가는 데 매사를 고단하게 해서 더 노력하게도 하지만 여전히 부족함은 답답함으로 남고, 그 분야의 이치를 깨우치는 데 한계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나는 궁여지책으로 내가 부족한 분야를 다룬 책을 읽는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들을 읽다 보면, 깜깜하던 나에게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슴푸레한 윤곽이 잡힌다. 답답함이 다소 해결되기도 하는 아주 만족스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길치인 사람, 음치인 사람, 그리고 한자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다.
1. 『대서울의 길』
김시덕∣열린책들∣2021∣534쪽

네비게이션의 길찾기 기능이 아무리 좋아도 복잡한 길에서는 길을 잃는 나 같은 길치들은, 지도가 머릿속에 있고 방향을 단번에 감지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서울에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40년 넘게 살고, 이사만 10번을 했음에도 서울의 전체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 이 책을 읽는 동안 서울 지도를 노트북에 띄워 놓고 읽었다.
묵직한 이 책은 예사롭지 않은 고증을 거친 전문가의 시선이라 요약하기도 어렵다. 기사를 참고해 정리하자면 『대서울의 길』은 문헌학자 김시덕이 ‘도시문헌학’이란 방법론을 표방하며 서울을 답사하고 쓴 ‘서울 선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다른 책들은 읽지 않았지만,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이 부분은 어느 책에 자세히 써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첫 번째 책 『서울 선언』에서는 아파트 단지, 상가, 골목, 공단, 종교시설 등 시민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답사기를, 두 번째 책 『갈등 도시』에서는 ‘대서울’ 개념을 등장시켜 파주, 고양, 의정부, 남양주, 성남, 용인, 의왕, 군포 등 서울 주변 경기 지역까지 답사 범위를 넓히며, 재개발·재건축과 특수시설 이전 등을 둘러싼 갈등을 주요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기사문을 읽고 나서야 『대서울의 길』이 서울의 범위를 서북쪽 파주에서 북쪽 철원, 동쪽 춘천과 원주, 동남쪽 안성, 남쪽 천안, 서남쪽 아산 신창, 서쪽 화성 남양반도와 강화도까지 넓힌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비전문가이자 심각한 길치인 나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세세해서 읽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지도를 펼쳐 놓고 작가의 생각과 글을 따라 읽으니 겨우 서울의 윤곽이 잡혔다.
조금 더 내용으로 들어가면, “서울시에서 주변 농업 지역으로 카나트식으로 도시가 퍼져 나갔으며, 그 주요한 경로는 철도와 도로였다.” 대서울의 전체 형태는 피자에 비유된다. “길을 따라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생활권, 예컨대 서울 사대문·영등포·강남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피자 조각처럼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 대서울이다.” 저자는 대서울의 길들을 서부·동부·남부로 나누고, 철길과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확장돼 가는 서울의 현장을 확인한다.
읽다가 너무 어려워 작가가 등장하는 동영상도 찾아보았다. 그의 지식은 또 다른 측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결국 ‘돈이 되는 땅의 위치’를 알고자 하는 것이기에, 저자의 말이 그런 수요를 위한 콘텐츠로 소비되는 듯해 씁쓸했다. 책 속에서 ‘서울 강남이 대서울 동남부로 확장되는 과정’을 다룬 ‘확장 강남’ 부분이 주로 그런 식으로 인용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학자의 설명일 뿐,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동영상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책에서는 길의 단절과 건설로 달라진 마을의 운명, 경춘선 폐선 구간의 재개발 사업,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 유치 등 첨예한 갈등을 저자의 따뜻하고도 매서운 시선으로 담아내 더 좋았다. 읽었다고 해서 길치인 내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서울의 전체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몰라서 엉뚱하고 잘못된 인식을 하기 쉬운 나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2. 『클래식 왜 안좋아하세요?』
권태영∣빅피시∣ 2025∣247쪽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다 절망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박치는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시간이 걸린다. 물론 감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 약하면 호기심이 덜 생기고, 호기심이 생기지 않으면 들여다보지 않으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음악 관련 책을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려는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음악을 단번에 이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길 것 같다. 정돈된 지식의 일목요연함은 그 분야가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이 알기 힘든 음악 세계의 윤곽을 보여준다.
이 책은 <탱로그> 동영상을 운영하는 사람답게, 무겁고 어려운 클래식을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맛있게 엮었다. 정작 작가의 동영상은 아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티키타카를 알아듣지 못했는데, 책은 클래식을 가볍고 쉽게 다가가게 하여 이해를 도왔다. 매니아층을 겨냥해 편집된 영상에 비해, 책은 음악 지식이 부족해 감상이 어려운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디테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종이책이 주는 매력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의 순서대로 베토벤부터 이름도 낯선 음악가들의 음악을 책으로 읽고, 관련 동영상을 찾아 들었다. 좋은 동영상들이 이렇게 잘 만든 종이책으로 출간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치라 음의 미묘한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고, 그림의 구조도 잘 보이지 않지만, 스토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좋은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클래식을 작곡가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주어 친근하다. 길치에 박치인 내가 스토리에 강한 건, 부족함 때문에 억울하거나 주눅들지 않게 해주어서도 좋다. 그래서 책 읽기가 좋다.
#클래식 #베토벤 #모짜르트 #차이코프스키 #60+ #책읽는사회문화재단
3. 『성격있는 한자성어』
최상근∣문자향∣2025∣167쪽

공간 감각이 부족한 나는 수학에서 도형, 언어에서는 한자를 쓰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한자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내가 직접 쓰려면 한 획이라도 빼먹거나 정확히 쓰지 못해, 주로 읽는 쪽만 잘 되었다. 누군가 “한자는 상형문자라 공간 감각이 없으면 획이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아 그렇다”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이 근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한자의 힘을 알고도 본격적으로 배우거나 관련 책을 찾아 읽은 적이 거의 없었다. 학습용 고사성어 책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한자를 익히는 노력도 특별히 하지 않았다. 서예를 해본 경험이 있음에도 상형문자인 한자가 주는 미학적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워 재미를 못 붙였다.
하지만 한자어는 우리의 일상과 너무 밀접하다. 한자어를 제대로 알면 언어가 얼마나 풍성해지는지도 알고 있다. 몰랐던 한자어의 의미를 새로 알 때마다 ‘뜨끔’하면서, 한자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곤 했다.
국어교사이다 보니 한자나 고사성어 관련 책을 여러 권 살펴봤지만, 학습용 수준에 그쳐 건성으로 넘기기 일쑤였고, 기억에 남는 책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은 공부하는 학생용으로도 손색이 없고, 어른들이 우리말을 풍부하게 구사하고 싶을 때에도 도움이 된다. 일상에서 잘못 알고 있는 한자어를 바로잡아 주는 점도 좋다. “아차, 그렇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대목이 많고, 주제별로 정리된 한자어들은 어휘력을 확장시켜 준다.
친절하게 설명된 고사성어는 대충 알고 있던 의미를 선명하게 밝혀 주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우리말을 정확하게 쓰고 싶은 사람은 물론, 배우는 학생들도 옆에 두고 읽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오래된 글자가 품은 지혜롭고 섬세한 뜻을 한자 자체의 구조로 풀어내 주어, 내가 생각을 정리할 때 더 정확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자어와 MBTI를 연결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한자어가 많은 우리말 대화에서 적절하게 말할 수 있는 단서를 준다. 한자와 한자어는 여전히 지금 우리의 삶과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강애라
- 숭곡중학교 국어교사. 전국학교도서관모임 전 대표. 서울학교도서관모임 회원.
책을 통해 성장한 저는 책과 함께한 시간이 소중해서, 평등하고 온기가 넘치는 학교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성찰이 있어 평안한 60+의 인생을 향해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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